MBC 기자 임명현 “기자로 일하다 버려져 재활용쓰레기가 된 느낌”

MBC가 급기야 뉴스를 녹화방송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9월 4일부터 시작된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의 여파다. 생생한 새 소식 전달을 생명으로 하는 뉴스를 유례없이 녹화방송 하는 것도 답답한데, 더 안타까운 건 녹화된 뉴스를 방송해도 시청자들이 모를 정도로 MBC 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이다. 공영방송 체면이 말이 아니다.

도대체 MBC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 궁금한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줄 책이 출간됐다. MBC 임명현 기자가 MBC기자 27명을 인터뷰한 뒤 쓴<잉여와 도구>(정한책방/2017년)이다. 지난 8월에 개봉한 방송의 몰락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 감독은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은 MBC라는 우리 시대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들이 저널리스트들의 의식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데 지난 9월 28일, 파업 중인 상암 MBC 근처 카페에서 만난 임명현 기자는 “꼭 MBC 문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와 함께 MBC와 다이어트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함께 파업했지만산산조각 난 사람들 모습 속에서 희망을 묻다


Q 올해 초 발표한 석사논문(‘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MBC 사례를 중심으로’)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논문 주제를 그렇게 잡은 배경이 궁금하다.


MB정부부터 치면 9년, 김재철 전 사장의 등장으로 치면 7년, 2012년 파업으로 치면 5년인데 그 시간동안 MBC 구성원들은 정지한 듯한 시간을 보내왔다. 그동안 어떤 사람은 나름의 방식대로 싸우다가 전사하고, 어떤 사람은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이고, 누구는 그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 같고, 또 다른 누구는 아예 방향을 바꿔서 다른 쪽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5년 전에는 같은 마음으로 파업을 했던 사람들이 산산조각이 나 있는 모습 속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있다면 어떤 측면 때문인가에 대해 답해보고 싶었다.

또 개인적으로도 기자를 하고 싶어서 MBC에 온 거면서 지금 기자를 할 수 없는데도 왜 그대로 머물고 있는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싸우지 않는지. 어느 순간 이런 물음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스스로에게 물어서는 답이 잘 안 나와서 주변 동료들을 통해서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려고 했다.


Q 책에서는 2012년 파업 이후 MBC 사측이 비인격적 인사관리를 해왔다고 썼다. 어떤 식으로 인사관리를 했나.

우리나라는 경영자들이 정리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경영상 긴박한 필요가 입증된 경우에만 할 수 있는데도 사용자들은 성과가 저조한 노동자, MBC 같은 경우는 경영자의 철학과 맞지 않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싶은 거다. 그때 법 때문에 못하니까 자기 발로 나가게끔 조치를 하는 거다.

이를 테면 현업과 관련 없거나 굉장히 먼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거나 언어적인 표현으로 모욕을 느끼게도 하고. MBC 같은 경우도 자기 일이 아닌 일을 시키고, 브런치 만들기처럼 업무와 상관없는 교육을 몇 개월씩 받게 했다. 또, 그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한번 밀려난 사람은 다시 자기 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Q 그렇게 사측으로부터 내쳐진 기자들을 ‘잉여적 기자’라고 표현했다. 버려졌다는 뜻인가.

그렇다. 스스로 재활용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약간 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필요 있는 걸 버리는 사람은 없잖은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사람이 된 거다. 취재하면서 안 사실인데 종이박스를 재활용한다고 다시 종이박스가 되는 게 아니라 주차장에 있는 뒤로 더 이상 못 가게 막는 턱 같은 것이 된다고 한다. 기자로서 일하다가 버려져 현재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맥락에서 재활용 쓰레기인 셈이다.


Q 영화 ‘공범자들’을 보며 착잡했다. ‘PD수첩’을 만들던 PD가 4년째 스케이트장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려웠던 건 그런 인사를 모멸적인 인사관리라고 했지만 스케이트장 관리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취재를 하고 방송을 하던 내가 거기서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모멸감이 분명히 있는데 그렇다고 이걸 뭐라고 하기엔 이 일을 계속 해오던 분들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에 계속 부딪치는 거다. 그런 부담감들이 더해지면서 회사를 나간 분들도 실제로 있다.
본 업무로 돌아가지 못한 ‘잉여적 기자’ 91명...기자, PD, 아나운서로선 죽은 것

Q 지금도 본래 업무로 돌아가지 못한 ‘잉여적 기자’가 91명에 이른다고 했고, 이들이 느끼는 감정구조도 파헤쳤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고, PD나 기자, 아나운서처럼 방송하는 사람들은 특히 시청자들로부터의 인정, 동료들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가던 사람들인데 자기 일을 못하게 되면서 인정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육체적 생명은 살아있지만 MBC에 있는 한 기자로서, PD나 아나운서로선 죽은 거다. 존재가 상실된 것이기 때문에 슬픈 일이다.

그런데 어떤 죽음이 사회적으로 사건화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보면,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그 죽음이 납득이 되는 죽음인가’라는 부분이 큰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나면 어쨌든 죽는 거니까. 기자라고 해서 영원히 기자인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끝나는 일인데 정년퇴직처럼 납득이 되는 끝이면 상실로 슬프더라도 다시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MBC는 납득이 안 되는 경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거다.

나만해도 2012년 파업 때 정직을 받았는데 징계 사유가 5가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5가지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근데 나만 징계를 올렸고, 그 이유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실이 된 것에 대해 내상이 생겼던 것 같다. 납득이 가는 죽음은 내 잘못은 아니다. 세상의 이치지. 반면 납득이 안 가는 죽음이나 상실은 내 잘못 같다. MBC 같은 경우도 ‘내가 너무 튀었나’, ‘내가 너무 나섰나’, ‘총회 때 그런 발언하지 말 걸 그랬나’가 된다. 아니면 ‘나는 이렇게 힘든데 왜 내 옆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처럼 주변을 괴롭히게 되고….


Q ‘잉여적 기자’의 반대편으로 파업 뒤 보도국에 그대로 남거나 파업 중과 이후에 뽑은 시용‧경력기자들을 ‘도구적 기자’로 칭했다. 그들이 지난 5년간 주로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건 부끄러움 같다.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당당하게 던지지도 못하고, 자기 결과물에 만족하지도 못하는 부끄러움을 책에서는 수치심이라고 썼다. 동시에 자기 방어기제도 컸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외부에서 공격당한다고 느껴지면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논리를 내세우는 거다. ‘다 저항하고 다 쫓겨나면 여긴 누구 게 되라고!’처럼. 그와 함께 무력감도 있었다. 뭘 해도 안 된다. 싸워봐야 소용없다는….


Q ‘도구적 기자’들에게도 순응의 마지노선이 있었다고도 분석했다.

이렇게 가는 흐름을 막을 힘은 내게 없다. 니들 마음대로 하라. 대신 나한테만 시키지 말라는 마음들인 거다. 그런데 도저히 자기 윤리나 상식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시킬 때는 내 걸 고집하자니 쫓겨날 것 같으니 적당한 수준에서 절충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피곤한 거다.

예를 들면 기사 전체에 ‘세월호 참사’라는 말을 10번 썼는데 위에서 다 ‘세월호 사고’라고 고치라고 할 때 무조건 ‘참사’라고 쓰겠다고 개기는 게 아니라 ‘5번은 참사라고, 5번은 사고라고 쓰면 안 될까요?’가 되는 거다. 그것도 안 된다고 하면 ‘그럼 2번만 참사라고 쓰면 안 될까요?’가 되고. 밖에서 보기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기자들에겐 그것도 중요한 거다. 참사라는 표현을 적어도 한두 번은 써야 그래도 뭔가 스스로에게 조금 덜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어떤 후배가 이런 상황을 기막힌 표현으로 비유했다. ‘없는 동네에서는 3천원 가지고도 살인이 난다’고. 마지노선이라는 게 밖에서 보기엔 무의미하지만 기자들에겐 나름대로 절박했던 거다.


Q 그랬던 마음들이 작년 촛불집회로 더 복잡해졌을 것 같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이후 발생한 촛불집회는 MBC 구성원들에겐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건이었다. 두더지 게임처럼 튀어나오는 순간 계속 망치로 얻어맞아서 더 이상 아무도 안 나오고 눌려있던 사람들에게 ‘이제 나가도 되나’ 고민을 해준 계기였으니까. 나가서 맞을 수는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면 맞아도 보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다. 우리의 저항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 파업까지 이른 것 같다.
언론의 권력 감시... 정확한 정보 제공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눈치 안 보는 것

Q 만약 이번 파업이 승리해서 보도국으로 복귀를 한다면 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나.

하아. 어. 어.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 관련 기자회견 때 정부 관계자를 당혹케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퍼붓던 임 기자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런 게 많아야 하는데 나도 뉴스를 안 한 지 오래 돼서 그런 생각을 하면 감이 잘 안 온다. 다시 돌아가면 뭘 할 수 있을까. 기자 일 자체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다 보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9년 전, 중국산 멜라닌 파동 관련 특종을 했을 때 그 피해양의 수치까지 정확히 들면서 그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저널리즘을 다시 구현하고 싶다는 듯.)

나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눈치를 보지 않는 거라고 본다. 내 경험에서 나온 얘기지만 최대한 정확하게 접근한 정보는 대체로 약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일 경우가 많다.


Q 지금까지 MBC 얘기를 했지만 비단 MBC뿐 아니라 한국사회 어디에나 해당되는 이야기 같다.

그렇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나는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뭉쳐서 자기들의 상황을 바꿔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세월호나 쌍용차, 밀양 같은 큰 문제가 터졌을 때 권력은 비슷하게 갈라놓는다. 산 자와 죽은 자, 순수한 내부인과 외부인 식으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서로 공격하기보다 서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면서 조그만 연대나 움직임에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어제도 시민 한 분이 추석이라고 파업장에 송편을 가져 오셔서 나눠 주셨는데 그런 데 감사하고 또 우리도 어딘가에 가서는 그렇게 하고….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저항이라는 문제, 저항이라는 말이 너무 투쟁적이면 뭔가 바꾸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 거칠게는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경우에 나는 다이어트를 유예하는가. 또 어떤 경우에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는가. 책에서 행간을 읽다 보면 와닿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 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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